Post

들어가며

2024년 회고 이후로 첫 글이라는 게 놀랍다. 작년 회고를 보니 이누가 태어났는데, 이제는 날아다닌다. 장난도 많이 치고 아빠 생일 축하도 해준다. 오늘은 생일 선물로 자유시간을 받아서 회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글쓰는 것 자체가 어색하지만, 자기검열을 내려놓고 뭐라도 써본다.

올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제한된 시간 내에 극도의 효율성”이다. 육아와 가족, 일의 균형 속에서 이제 밤 늦게까지 무리해서 일을 마무리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방식과 결정하는 태도를 바꿔야 했던 한 해였다.

결정과 책임 - 인테리어에서 배운 것

올해 초반에 가장 분주하게 했던 이벤트는 인테리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면서 인테리어를 했다. 친척의 도움을 받아서 용기를 내서 반셀프 인테리어를 했다.

솔직히 정말 힘들었다. 2달 안에 6kg 이상 빠졌던 것 같은데, 공사 전에는 매일 밤 집에 가서 치수 확인하고 마커로 표시했고, 공사 중에는 매일 아침 각 공정의 주의사항을 체크하고 잘못된 것 없는지 확인했다. 취미로 셀프 인테리어 카페 들어가서 글 읽을 때는 즐거웠는데, 몇 주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끌려다니지 말고 네가 결정해라

인테리어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싱크대 사장님이 해준 말이다.

각 공정 사장님의 조언과 친척의 조언이 다를 때, 나는 “OO의 의견이 그래서 이렇게 진행했어요”하고 핑계를 댔다. 그랬더니 싱크대 사장님이 조언해주셨다.

“끌려다니지 말고 네가 결정해야 한다.”

각자 취향이 있고 중요하게 여기는 바가 다르다. 이제 인테리어 끝나고 집 방문하면 손님들이 다들 어디는 아쉽고 어디는 어떻다고 자기 관점에서 평가할 거라고 했다. 중요한 건 내가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게 꽤나 머릿속에 오래 남게 되었는데, 결정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깨달았다. 내가 온전히 책임을 져야 제대로 만들 수 있고, 잘못되면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이 깨달음은 단순히 인테리어를 넘어 일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일하는 방식의 전환 - 레고에서 설계도로

바뀐 상황

육아하는 시간 + 가족 행사가 많아서 자연스레 업무에 영향을 주었다. 예전처럼 넉넉하게 시간을 쓰면서 고민하고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AI에게 질문할 때도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지? 그리고 이 분야의 대가는 어떻게 생각할까를 매우 자주 물어보고 있다.

기존 방식의 한계

일을 레고 조각처럼 나눠서 하나씩 쌓아올리는 전략을 썼었다. 작은 단위로 나눠서 틈틈이 처리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이렇게 했더니 전체적인 흐름을 나중에야 확인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새로운 전략

전체적인 흐름을 먼저 설계하고 연결한 다음 디테일을 채워 나가는 방식으로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 레고 조각을 쌓아올려야 전체적으로 작동되는 기능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단 어느 정도 작동하게 하고 디테일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바꿨다.

구체적으로는:

  • Todo list 작성: 큰 작업을 세부 작업으로 나누기
  • 역산 방식: 목표 날짜로부터 역산해서 채워 나가기
  • 협상 포인트 파악: 일정이 밀릴 것 같으면 스펙이나 일정에서 협상해야 함

이렇게 하면 초반에 전체 기능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나중에 “아, 이렇게 연결되지 않네”라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기술 복잡도와 현실적인 선택들

HDR/SDR - 시스템 전체를 보는 법

HDR/SDR 전환 작업에서는 하나의 기능이 작동되기 위해서 전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Pipeline, CMS, Server, Client 흐름을 배울 수 있었다.

복잡한 시스템이지만 전체 흐름을 먼저 파악하니 디테일을 채워나가기 수월했다.

Chromecast Sender - 잘못된 일정 산정

Chromecast sender 작업은 일정 산정을 잘못한 예시다.

모바일 작업보다 1/10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모바일 공수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큰 것 같다. 레거시 코드이기도 했고 비슷하게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특히 시간 변화에 따라 동적으로 들어오는 이벤트에 대한 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웠다.

여기서의 교훈:

  • 모바일과 Chromecast sender 작업을 1:1 정도의 공수로 산정한다
  • 공통 기능을 먼저 고려해서 공유할 수 있는 코드를 만든다

tvOS - “이 기능이 왜 필요한가?”

tvOS에서는 무리해서 custom button을 실험하기보다, native UI가 지원하는 내에서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제시했다.

별것 아니긴 한데, 이 기능이 왜 필요할지, 꼭 필요한지를 계속 질문하게 되었다.

마음가짐의 전환

이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어야 했던 말이 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기능 구현을 못하는 게 아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모든 걸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보다,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면서 현실적으로 유지보수 가능한 코드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족과 함께한 순간들

올해는 유독 가족 행사가 많았다.

  • 이누의 돌잔치
  • 아버지 칠순 잔치
  • 제주도 여행
  • 아내 박사 졸업 (설문지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졸업 프로젝트에 도움을 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누의 성장. 작년 회고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였는데, 이제는 나랑 소통도 하고 아빠 하고 불러준다.

나를 닮은 모습을 한 아기가 작은 행동을 하면서 뿌듯해하고 또는 노력하다가 잘 안되면 속상해하는 것을 보면서, 어른이 된 내 모습도 여전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에게는 가혹하게 하는 편인데, 이누를 보면서 내 자신과 화해하고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이런 순간들이 있었기에 올해가 더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무리 - 2025년을 지나며

올해 배운 핵심을 정리하면:

  • 결정과 책임: 끌려다니지 말고 내가 결정하고, 그 책임을 온전히 지기
  • 효율적 설계: 레고 조각이 아니라 설계도를 먼저 그리기
  • 현실적 선택: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제한된 시간에서 최선의 선택하기
  • 협상의 중요성: 일정이 밀릴 것 같으면 스펙이나 일정에서 미리 협상하기

여유로운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 명확하게 결정하는 태도,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들이 생겼다. 힘들었지만 뭔가 배운 게 있기는 하다.

2026년에도 제한된 시간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년에는 또 어떤 것들을 배우게 될까. 무섭기도 하지만 기대도 해본다.